냉면/평양냉면

분당 수래옥

Cold Noodle 2025. 1. 20. 18:29

대한민국 평양냉면의 뿌리를 찾을때, 보통 4군데의 공인된 노포를 꼽는다. "태초에 네 곳의 냉면집이 있었으니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바로 우래옥, 의정부 평양면옥, 장충동 평양냉면, 그리고 을밀대이다.

 

이 중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밑으로 치는(네 군데 중에서 꼽자면 그렇다는 것이지, 맛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을지로에 있는 우래옥은 70년된 노포로, 웬만한 시간에는 대기해야하는 유명한 냉면집 중의 하나다. 우래옥 냉면은 조금 특이한데, 다른 평양냉면들에 비해 고명이 많다. 고기, 무가 들어가는 것은 평양냉면의 공식이고 배가 들어가는 경우도 더러 볼 수 있지만 더 특이한 점은 평양냉면 고명으로 김치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우래옥은 양념 갈비 구이와 불고기를 중심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냉면으로 더 유명하다. 우래옥 냉면은 조금 평양냉면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이한데, 육수에 동치미 국물을 섞지 않고 소고기로만 맛을 낸다. 따라서 밍밍하다는 평이 많은 을지면옥 계열 냉면에 비해 간이 세서 평양냉면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 육수에 동치미를 섞지 않는 평양냉면을 흔히들 "우래옥 계열"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으로 봉피양이 있다. 봉피양의 김태원 장인께서 우래옥 출신이라고 한다. 

 

우래옥에서 강남에 분점을 내었는데, 2010년 말 우래옥이 서울시의 불시 위생 점검에서 영업 주의 조치를 받았고, 2020년에 또 강남 지점이 위생에 문제가 되었는데, 이때 강남 지점 영업을 중단하고 재공사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경기가 악화되면서 우래옥 강남 지점이 아예 없어졌다. 

 

이때 우래옥 강남지점에 있던 분들께서 분당에 평양냉면집을 개업하였으니, 바로 수래옥이다.

 

 

그러다 보니 매뉴는 우래옥과 아주 비슷하다. 양념 갈비는 없지만 육회, 등심, 불고기를 중심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고, 평양냉면과 비빔냉면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온면이 메뉴에 있는 것 또한 우래옥과 같다.

 

 

불고기 냉면 이외에도 육개장, 장국밥, 갈비탕이 메뉴에 있는데, 이것 역시 우래옥과 같다. 우래옥에는 김치말이 냉면이 있는데, 메뉴판에만 없는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냉면 역시 우래옥과 비슷하다. 면은 100% 메밀면은 아니지만 메밀 함량이 꽤 높다. 봉피양 처럼 툭툭 끊어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을지면옥이나 을밀대와 비교하여 메밀 함량이 높아 면을 풀기전의 육수 맛과 면을 풀고 난후의 육수맛이 많이 차이가난다. 우래옥 냉면에는 고명으로 배, 무가 들어가고 또 특이하게 김치가 들어간다. 개인적으로 우래옥 냉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김치말이 냉면은 꽤 맛있지만 평양냉면에 김치는 이질적이고 육수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평양냉면은 대부분 놋그릇 식기에 담겨 나오는데, 우래옥은 사기그릇에 담겨 서빙된다. 사기그릇을 쓰는곳은 잠실에 있는 평가옥밖에 보지 못했는데, 수래옥 역시 사기그릇에 담긴 냉면을 내 온다.

 

 

수래옥 냉면 역시 김치 고명으로 들어가 있다. 그런데 김치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우래옥 냉면과 달리, 고명으로 들어간 김치의 양이 많지 않아 김치향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래옥은 먹고난 후 김치 고명의 맛이 꽤 오래남을 정도인데, 수래옥은 신경써서 보지 않으면 김치 고명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우래옥에 비해서 육수의 맛이 강하지 않는데도 김치의 맛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섭섭하다면 섭섭하달수 있는것이, 삶은 계란이 없다. 우래옥 육수에도 파가 들어가 있는데, 수래옥 역시 그렇다. 육수는 의정부 계열 냉면처럼 맑지는 않고 아마도 간장 빛깔인것 같은 갈색이 비친다. 면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육수를 한 모금 마셔보면 쇠고기 육수 향과 쇠고기 뭇국 맛이 살짝 난다. 약간 새큼한 맛이 있는 건은 배의 단맛과 고명으로 올라간 김치의 맛이 섞여있기 때문인데, 우래옥의 강한 육수맛에 비하면 아주 순화된 맛이다. 

 

면도 메밀의 함량이 그리 높지 않다. 우래옥은 봉피양 만큼은 아니더라고 메밀의 함량이 꽤 높아 면을 풀기 전과 풀고난 후의 맛이 많이 다를 정도인데, 수래옥은 그렇지 않다. 식감도 조금 단단한 편이다. 약간 덜 삶은 당면 느낌이다.

 

이 정도면 그릇과 고명의 구성을 제외하면 우래옥이라는 이름을 지워도 무방할 정도다. 고명도 가지 수만 비슷할 뿐이지 우래옥의 시그너처를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부족한 정도가 아니고 다른 그릇을 사용한다면 완전히 다른 냉면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육수에서 육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나름의 팬이 있는 김치 고명의 맛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4대 냉면집이자, 계열을 결정할 정도의 최강자 레벨에 있는 우래옥에서 파생된 냉면집이지만, 다른 계열의 냉면이라도 생각해도 될 정도다. 우래옥의 시그너처와 같은 구성으로 냉면을 내지만, 조합이 너무 약해 시그너처가 무색하지는 맛이다. 물론, 흔한 프랜차이즈 냉면과 비교할 건 아니지만 가격을 생각한다면 많이 아쉬운 맛이다.

 

위치: 경기도 성남비 분당구 대왕판교로 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