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판교에는 맛있는 냉면집이 없다고 투덜댔었는데, 분당에도 냉면집은 꽤 많다. 하지만 역사가 긴 냉면이라는 음식의 특성상 냉면집들은 초창기 서울의 번화가인 종로 - 을지로 - 명동 쪽에서 시작했다. 을지로 - 명동 - 장충동에 냉면의 명가가 많은 것이 그 이유다. 강남이 개발되고 강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지역이 되면서, 강남에 신흥 냉면집이 많이 생겨났다. 명가의 분점도 강남에 다 생겼다. 그런데 판교가 있는 분당에는 왜 냉면의 명가가 없고 명가들의 분점도 많이 없을까. 아마 분당의 땅값이 너무 비싼데다, 음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이 아니고, 강남이 가깝기 떄문이 아닐까 싶다.
분당에도 분당이 태생인 또는 분당에 본점이 있는 성일면옥이나 평가옥 등 몇몇 괜찮은 냉면집이 있지만, 전통의 명가에는 미치지 못한다. 봉피양 분점과 판교 현대백화점에 있는 정인면옥 분점이 있지만, 그 두곳을 제외하면 감탄이 나올만한 평양냉면집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십여년쯤 전부터 신흥 냉면의 최강자로 불리는 집이 판교 그것도 끝자락에서 탄생했으니, 바로 능라도다. 블로그, 신문등에서 전통의 냉면 명가외에 신흥 냉면의 최 강자로 언급되는곳이 바로 능라도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냉면집이다.

능라도는 '평양냉면의 계보'에 속하지 않는 곳이다. 냉면에 심취한 창업자께서 전국의 수 많은 냉면을 맛본 후 각 냉면의 장점만을 조합하고 거기서 조화로운 맛을 찾아내서 만든,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조합으로 새로운 평양냉면을 만들어 낸 곳이라고 한다. 2세대 냉면집 중에서는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곳이고, 가장 '균형잡힌' 맛을 내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냉면 강자 답게, 메뉴에 거냉(온면)이 있다.. 사진에는 평냉 곱배기와 보통이 같은 그림이지만, 실제로 곱배기를 시키면 사진에서 보이는 사리가 딱 두개가 제공된다. 곱배기를 시키면 양이 꽤 많다. 어복쟁반도 메뉴에 있고, 편육과 제육도 메뉴에 있다.
요즘 식당에 가면 메뉴판을 보기 힘든곳이 많다.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곳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키오스크만 제동되는 식당은 가기가 싫다. 동네 분식집이 아니고 정체성을 가진 식당이라면, 그 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의 종류로 그 식당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설렁탕집에서 수육을 팔지 않는다면 엑기스를 쓰는 집이고, 평양냉면집에서 어복쟁반이 있으면 북쪽 음식에 조예가 있어 고기를 수분으로 조리하는데 뛰어난 식당이라는 의미다. 메뉴판이라는게 이런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데, 메뉴판에 나열된 음식의 순서나 종류를 보면 방문한 식당의 장점과 어떤 음식을 어떤 순서로 먹어야 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카테고리로만 음식을 분류하고 때로는 선불을 강요하는 듯한 이런 키오스크에서는 그런 것을 느낄수가 없다. 빨리 먹고 나가라는 식의 컨베이어 시스템같다.
이런 점에서 능라도는 마음에 든다. 능라도에 방문하면 모든 탁자에 메뉴판이 배치되어 있고, 키오스크에서도 모바일 메뉴판을 볼 수 있다. 디지털 메뉴판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하드카피 메뉴판으로 음식을 둘러 본 후 주문만 키오스크로 하는식이다. 요즘 식당들, 특히 파스타와 피자를 파는 식당들의 메뉴판을 보면 누런 A4 한장에 음식 이름만 카테코리로 나눠 정리된 메뉴판을 주는 곳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당은 잘 가지 않는다. 그런 메뉴판이 한때 트렌드였는데, 메뉴판이 그렇다면 음식도 트렌드에만 따라가는 맛을 내는 곳이 많다.

능라도 냉면 맛을 처음 본 것은 대략 5~6년 전인것 같은데, 사실 맛이 조금 변했다. 분당으로 이사온 후에는 한달에 한번 정도는 방문했는데, 맛이 점점 변하는 것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을밀대 계열 냉면(봉피양 등) 냉면의 카피에 고명과 육수가 다른 맛이었다.
면을 풀기 전에 육수 맛을 봤다. 거의 의정부 계열 냉면의 육수 맛이다. 의정부 계열 육수 중에서도 을지면옥 육수의 딱 그 맛이다. 처음에는 틀림없이 이 맛이 아니었다. 육향이 훨씬 진한 맛이었다. 육향이 진한 육수를 쓰는(물론 MSG도 들어간) 을밀대 계열 육수의 맛이었고, 그래서 봉피양 냉면의 카피같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육향이 흩어지고 훨씬 부드러운 맛을 내는 의정부 냉면 계열의 육수에 가깝게 변했다.

고명도 변했다. 기억에 처음에도 삶은 계란이 올려져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계란 지단이 올려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이가 아니고 물김치가 고명으로 올라가 있다가, 오이로 바뀌었다. 이 오이도 처음에는 양념안된 오이 절임이었다가, 신맛이 점점 강해져 지금은 오이 초절임이 올라온다. 무절임의 양이 조금 많았는데, 무절임의 신맛이 조금 강해지고 양은 줄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면과 고명을 풀면 육수 맛이 조금 변한다. 전에는 면을 풀면 메밀맛이 육수에 섞인 평양냉면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는 맛이었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것 같다. 육수에 신맛이 섞여 육향도 아닌 것이 감칠맛도 아닌 맛을 낸다.
고기 고명만은 여전하다. 이전보다 조금 얇아진 것 같기는 하지만 크고 튼실한 고명, 군내라고 전혀 없는 고소한 고기가 메밀과 섞인 육수에서 육수의 맛을 지탱한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을지냉면 육수에 봉피양 면, 평양면옥 고명이다.
오늘만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오이 초절임의 신맛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오이 절임이 흐믈거리기 까지 해 식감을 상당히 해치고 뒷맛을 쓰게 한다. 을지면옥같은 부드러운 맛을 내난 육수에 신맛은 그렇게 잘 어울리지 않는데, 오이 절임의 식감도 좋지않은 신맛이 맛의 균형을 완전히 깨트린다.

이전의 능라도 냉면은 전통적인 냉면의 장점만을 잘 조합한 신흥 냉면의 최강자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시간이 이유일까. 장점은 다 사라졌다. 이쯤 되면 특이한 변종이라고 불러도 될 듯 하다.
분당이 태생인 냉면중 유일하게 전통 냉면집들과 겨룰만한 집이었는데, 이젠 아닌것 같다. 3000원을 현금과 계좌이체로만 받는 강제적 바레 파킹도 별로다.
역시 한군데로만 정착해야 할 것 같다. 봉피양 판교점.
위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산운로 32번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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